Q. 안녕하세요! 간략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2015년부터 번역 일을 시작해서 프리랜서가 된 지 10년 차 되는 영한 번역사 김주희라고 합니다. 2019년에는 번역 구인구직 사이트 Proz에서 캠페인 프라이즈를 받은 바 있고, 지금까지 여러 럭셔리 브랜드를 담당하면서 번역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첫 시작을 빼놓을 수 없겠죠. 어떤 계기로 번역 또는 통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 받은 일감은 어땠나요? 이야기 들려주세요!
취미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까 싶네요.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번역을 재미있어했어요. 노래 가사나 시 같은 것들을 운율 맞춰서 옮기는 놀이를 좋아했거든요. 비록 그 결과물이야 지금 와서는 민망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고, 업무로서의 번역과도 방향이 한참 다르긴 했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보는 데 익숙해지는 계기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소위 '정상성'을 따르는 루트로 취직을 했죠. 번역은 가끔 봉사 활동하는 수준으로만 하면서요. 그런데 저는 제가 조직 생활에 맞는 성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든요. 거기에 이런저런 사유가 겹쳐 회사를 나오게 됐는데, '참, 번역하면서 말을 가지고 노는 놀이가 재미있었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열심히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는 방법을 조사했어요.
실제로 돈 받고 일한 번역 업무는, 주변의 아는 분께서 영한 감수를 맡겨 주신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프리랜서의 인맥 관리가 이래서 중요한가 봐요. 뭔가 시작하기로 했으면 내가 이런 걸 한다고 주변에 외치고 다니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요!
Q. 지금까지 일해오시면서 경험한 일이나 배운 것들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부모님 연봉만큼은 찍어보겠다. 이게 초창기 목표였어요. 거창하죠! 다시 생각해 보니 참 민망하네요. 그런데 초기부터 왜 이런 소리를 했느냐면요. 이전 질문에서 간단하게 말씀드렸지만, 저는 회사를 나온 후에 전업 프리랜서 조사를 시작하고 상당히 무모하게 뛰어들었어요. 보통 생활비 몇 개월분은 모아둔 다음에 시작하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여러분은 절대 이러지 마세요!). 그래서 시작할 때 가족이 그걸로 밥값은 하겠냐고 걱정을 많이 하셨죠. 저는 호쾌하게 대답했어요. 걱정하지 마시라, 이만큼은 해 보이겠다.
그리고 저는 쓸데없게도 기대를 받으면 부응해야 하는 성격입니다. 스스로 하는 기대에도 부응하고자 이력서를 열심히 돌렸고, 일감이 들어오면 거의 전부 받았어요.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는 수준이면 법률이나 의료 분야의 작업도 했고요. 단가를 지나치게 깎으려고 드는 PM, 작업물만 쏙 가져가고 인보이스를 보낼 때가 되니 잠적한 에이전시, 사흘 치 분량을 하루 만에 다 해달라고 일을 던지는 고객사... 별별 일을 다 겪은 시기였네요. 이렇게 말하면 고생만 한 것 같지만 좋은 프로젝트도 그만큼 많았고요! 아참, 저 거창한 목표도 결국은 달성했습니다.
'건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말이 있죠. 초기에 일을 많이 받느라 체력을 깎아 먹었다면 이쯤에서 꼭 어딘가 병이 납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없던 알레르기도 생기고, 밤에 잠을 못 자고, 기타 등등. 이렇게 되니 몸이 아픈 것도 물론 문제였지만 작업 능률도 확 떨어졌습니다. 사실 저는 일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사실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네요. 이렇게 호되게 앓은 후에야 작업을 많이 받는다고 능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 시기에는 워라밸을 다시 잡아볼 필요성을 크게 느꼈습니다.
혹시라도 밤샘 마감하고서 이 인터뷰를 읽는 분이 계신다면 지금 당장 30분이라도 꼭 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몸이 고장 날 정도로 일하셨다면 분명 에이전시와 관계도 나쁘지 않으실 테니, 병가를 며칠 내도 잘리지 않습니다! 쉽시다! 이렇게 말씀드린 저도 저 자신을 챙겨야겠죠? 최근에는 몸과 정신의 건강에 집중하고 있어요. 팬데믹 기간이 지나가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할 수 있을 때 해야 된다, 셀프 케어도 마찬가지다! 하고요.
그런 차원에서 요즘은 업무에만 파묻히지 않게끔 이런저런 취미를 늘려가는 중입니다. 예를 들자면, 취미로 하는 악기를 직접 제작해 보고자 목공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미뤘던 여행도 여기저기 다녀왔고요. 번역 일도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확실하게 파악하니 초창기처럼 무턱대고 받지 않게 됐죠. '안정감은 챙기되 멈춰서 안주하지는 않기'가 지금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이제까지 정말 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하셨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으시다면요?
두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데, 하나씩 말씀드려 볼게요.
먼저 특이했던 프로젝트. 고객사에서 프리랜서 팀을 모아다가 오프라인 트레이닝을 시킨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은 화상 미팅으로 진행하는데, 이때는 고객사 담당자분들이 아예 출장을 오셨더라고요. 프리랜서들도 꼬박꼬박 출근해야 했어요. 덕분에 "프리랜서지만 오피스로 출퇴근한 전우애"로 팀이 똘똘 뭉쳤죠. 이때 좋은 동료 번역사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점점 가상이 현실을 대체할 거라고는 해도, 아직은 직접 만나는 경험이 강렬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프로젝트였네요.
두 번째로는 좋았던 프로젝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주얼리를 참 좋아하거든요. 특별히 사랑하는 브랜드도 몇몇 있고요. 그런데 마침 작년에 좋아하는 하우스에서 번역 작업을 맡겨 준 거예요. 고객사 입장에서 그리 중요한 텍스트는 아닌 것 같고 분량도 많지 않았는데 너무 신났던 거 있죠. 방에서 혼자 춤추면서 파일을 열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흐름을 이어가서 꼭 저 하우스의 주얼리를 사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일을 할 때 특히 지키려고 하는 원칙이나 철학이 있나요?
연락을 빠르게 하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든, 못 한다는 거절이든, 하다못해 실수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문이든 소통은 가능하면 빠르게 한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일전, 에이전시의 PM이 휴가로 쉴 때 대타로 간단한 업무를 처리해 준 적이 몇 번 있어요. 일일 PM 아르바이트라고나 할까요? 그때 PM 입장에서 번역사분들과 소통할 기회가 생겼었죠. 제가 엔드 클라이언트라면야 상대방의 연락이 좀 늦어도 기다릴 수 있겠지만, 에이전시는 그렇지 않잖아요. 번역사랑도 납기 맞춰야 하고, 고객사가 납품 언제 되냐고 하면 또 바로 대답해야 하고. 그 와중에 같은 에이전시 내에서 매니저가 리포트 언제 나올지 물어보면 또 답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회신을 바로바로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한 번 더 드리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이런 것들이 작업 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저렇게 일일 PM 경험을 해보고서는 선배 프리랜서들께서 연락은 빨리하라는 말씀을 괜히 하시는 게 아니었다고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기본적인 얘기지만, 원래 기본이 제일 하기 힘든 것 아니겠어요.
Q. 이 일을 하면서 성과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다른 분들도 많이 해주신 말씀이지만, 무소식이 희소식 아닌가 해요. 상세한 피드백이 자주 오면 반성부터 하죠. 고칠 부분이 많다는 뜻이니까요. 별말 없이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면 좋은 일이겠거니 가늠합니다.
프리랜서 시작하기 전에는 소득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단순히 말해서, 실력이 좋으면 그만큼 일도 많지 않겠어요? 그런데 막상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가려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단적인 예시로 제가 주로 맡은 업계들은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확실한 편이거든요. 업체들이 전체적으로 쉬어갈 때면 번역 품질과 관계없이 일이 줄어들죠. 특정 이슈로 반짝 떴던 산업이 시간이 지나며 급격하게 축소되는 일도 있고요. 이런 일을 몇 번 겪은 후로는 위에 적었던 저 단순한 생각을 버렸습니다.
여담이지만, 경력이 쌓이면 이런 점이 좋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금 더 큰 흐름을 생각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요. 다르게 말하면 배짱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Q. 현재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전문성에 대한 고민을 요즘 많이 합니다. 어디까지 알아야 전문가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노련하게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조금 더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없나. 이런 고민은 10년 차, 20년 차가 되어도 계속할 것 같아요. AI가 사람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이런 거 아닐까요? 내 일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 말이죠.
Q. 앞으로 가고 싶은 방향이나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내심 강의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위더네이티브에서 작년 11월에 특강 기회를 마련해 주셨죠. 극 내향형 외길 인생에서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여러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이번 경험을 살려 다른 쪽으로도 시도해 보고 싶지만, 제 안에서 덜덜 떨고 있는 내향인 자아와 잘 협상해 보겠습니다!